[중앙일보 칼럼 소개] 카피라이터 정철 ‘커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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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눈을 마시면서, 눈으로 진한 색깔을 마신다. 커피의 진함 속에는 추억, 설렘, 용서, 차분함, 응원 같은 것이 조용히 배어 있다. 눈에 띄지 않게 숨어들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누가 추억을 만들 것인지, 누가 설렘을 하는지, 누가 용서를 구하는지 알 수 없다. 다른 이유로 마시는 듯한 농도 이것이 커피의 잔잔한 매력이다. 만약 커피가 투명한 색이었다면 지금처럼 널리 사랑받지 못했을 것이다. 사람사전은 커피를 이렇게 해석했다. 이제 커피는 기분으로 마시는 액체가 아니라 일상의 습관 같은 것이 돼 버렸다. 왜 우리는 일상에 커피를 만들어 놓았을까? 맛있어서? 멋있어서? 이제 중독돼서? 혹시 외로워서가 아닐까. 도시에는 수많은 한 명이 살고 있다. 혼자 있어도 혼자. 같이 있어도 혼자. 혼자 알고 있다. 오늘도 외로움에 몇 대 얻어맞기를. 그 아픔을 안아줄 병원은 없다는 것을. 그래서 오늘도 커피 커피는 언제든지 손을 뻗으면 닿는 거리에 있는 외로움 치료제다. 세계에서 가장 조용한 자세로, 세계에서 가장 따뜻한 귀로 혼자만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근데 우리는 외로움을 마시면서 추억을 만들고 있는 척 설레임을 마시는 척 용서를 구하는 척 외로운 것보다 더 외로운 게 외로움을 들키는 거니까.오늘도 우리는 친구라는 익숙해진 외로움 치료제를 포기하고 커피와 마주 앉는다. 친구가 쉽게 하는 말을 커피는 하지 않기 때문이다. 커피는 바쁘다고는 하지 않는다.​

출처 : 중앙일보 오피니언